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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의 정의와 공의

2011.01.26 17:47

dahng woo 조회 수:86527

 

성경에서의 정의와 공의



Ⅰ. 들어가며

  지난 9월 초부터 올 1월 초까지 처음으로 구약을 통독하였다. ESV(English Standard Version) Study Bible의 study note와 구약 각 부분의 introduction 등을 참조하면서 보통 사람이 구약을 여러 번 읽을 정도의 시간을 들여 1번 정독하였다.

  

  이번 구약 일독 이전에는 성경에 나오는 정의(justice, mishpat(Hebrew), 공의{righteousness, tsedaqah(Hebrew)}에 관하여 아는 것이라고는 기독 법조인들이 좋아하는 말씀 중 하나인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정도였으나, 이번 일독을 통하여 선지서(특히 이사야서)에 유난히 정의, 공의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 것을 새로 알게 되었다.

  

  구약을 자세히 일독하였다는 말을 우리 교회 모 집사님 두 분에게 우연히 하였다가, 귀국 전에 성경에서의 정의 또는 구약에서의 정의에 대해서 최소한 두 분 또는 교인 전체에 대해서 정리하여 이야기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처음에는 농담으로 생각하였는데, 거듭되는 압박에 거룩한 부담을 느끼던 중에 성경에서의 정의, 공의에 대해서 내가 이해한 바를 한번 정리해 보는 것이 나에게도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정리해 보기로 결정하였다.


  나는 성경에서의 정의와 공의가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이해하였다. 즉, 하나님이 사람{(옛 이스라엘 및 새 이스라엘인 크리스천(교회)}에게 요구하시는 정의와 공의,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그것이다.

  

  이하에서는 성경에 위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정의와 공의를 구약과 신약에 걸쳐 살펴본 후, 위 두 가지 모습의 정의, 공의의 상호 관계에 대하여 묵상하여 보기로 한다.

  

  사실 최근에 구약말씀만 자세히 본 터라, 신약에서의 정의, 공의를 전체적, 포괄적으로 훑어보지 못하였으나, 신구약 전체에 걸쳐 정의, 공의를 검토하여야 사람이 행하여야 할 정의와 공의,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의 상호 관계를 묵상할 수 있을 것 같아, 신약에서의 정의, 공의도 내용과 체계가 빈약하지만 용감하게 정리하였다. 

 

Ⅱ. 바벨론 포로 전후로 하나님 섬기는 방법의 큰 변화1)

  구약의 율법(모세오경, the Torah)은 유대인들이 자신들과 언약관계에 있는 하나님께 올바르게 반응하기 위한 두 개의 기둥을 확립하였다. 하나는 ① 성전 중심의 의식(儀式), 의례(儀禮)라는 기둥(the temple-centered, ceremonial pillar)이고, 다른 하나는 ② 윤리․도덕적 명령의 준수라는 기둥(the pillar of observance of ethical and moral instruction)이다.

  

  남유다가 B.C. 586년 바벨론에 멸망하기 전까지 유대인들은 성전 중심의 의식에 치중하였고, 이에 대하여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역설하며, 성전에 대한 거짓된 믿음과 외적 형식에 치중하는 것을 꾸짖었다.

  

  이후 남유다가 멸망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됨으로써 선지자들의 예언이 옳았음이 입증되었는데, B.C. 538년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B.C. 516년 성전이 재건됨에 따라 제사장이 인도하는 성전 중심의 의식이 재확립되었음에도, 이때부터는 성전 중심의 의식보다 율법 준수가 더욱 강조되었다. 그에 따라 율법의 내용을 더욱 잘 알 필요가 있게 되어 율법 연구가 행해 졌고, 오직 성전이었던 예배의 중심지가 율법을 연구하고 배우는 장소인 지역 회당(synagogue)으로 확대되었다.

  

  율법을 자세히 연구한 결과 새롭고 다른 해석이 발생하였고, 그에 따라 율법을 확장하고 명료하게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새로운 전통(추가된 율법 등)이 탄생하였다. 예수님 시대에 추가된 율법이 가르쳐지고, 전승되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게 된 것이 랍비, 서기관(성경 필사자, 율법학자 겸 신학자) 등이고, 이러한 집단이 새로운 해석방법과 추가된 율법 등에 대하여 의견을 달리하여 갈라지게 것이 바리새인, 사두개인 등이다. 유대인들은 이런 랍비적 전통(랍비의 가르침과 논쟁 등이 말 또는 글로 전승되어 수세기 동안 쌓여가다가 A.D. 5세기 경 탈무드로 완성)에 모세오경과 동등한 신적인 기원(divine origin)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고 비판하였다(막 7:1-13 ‘고르반’과 관련된 전통 참조).


Ⅲ. 하나님이 사람{(옛 이스라엘, 새 이스라엘인 크리스천(교회)}에게 요구하시는 정의와 공의 - 사람 사랑으로 귀결됨

 1. 구약(성전 중심의 의식에 대한 선지자들의 비판에서 언급된 정의, 공의를 중심으로)

  가. 이사야 1:11-17

  제사(예배)하러 모인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고(13절), 손에 피가 가득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등(15절), 세상에서(성전 밖에서, 교회 밖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온갖 악행을 하면서도, 성전에서 제사 지내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성전(제사) 중심의 거짓된 믿음에 대하여, 하나님은 너희의 헛된 제물을 기뻐하지 않는다(11절, 13절), 너희의 절기도 싫다(13절, 14절), 성전에 제사(예배)하러 오는 것은 성전 마당을 밟는 의미(교회 출석) 이상은 없다(12절)며 질타하고 있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말씀지킴의 방법이 16, 17절에 명시되어 있는데 그 중요한 것이 “정의를 구하”는 것이고 그 구체적 방법이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사회적 약자 보호)하는 것이다.2) 

  

  나. 예레미야 7:4-11

  여기에 묘사된 성전중심의 거짓된 제사(예배)의 모습은 더욱 적나라하고 충격적이다. 도둑질하고, 살인하며, 간음하는 등 세상에서 온갖 나쁜 짓을 하고{형법상 처벌되는 절도, 살인, 간통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하나님 기준에서의 도둑질(내가 정당한 방법을 벗어나 취한 모든 물질적 이득), 살인(사람을 미워함), 간음(마 5:28, 욥 31:1-4 등 참조) 등을 의미한다}, 실제로는 마음에 풍요와 다산의 신인 바알, 재물의 신인 맘몬을 섬기며 위와 같은 악행을 계속하기 원하면서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일말의 죄의식을 해결하고,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전에 들어와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라고 말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내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진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면 섬뜩하다.

  

  하나님은 위와 같은 거짓된 성전 중심의 믿음에 대하여 이러한 성전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으시다는 전제에서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하시며(4절),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말씀지킴의 중요한 방법으로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할 것을 요구하시며(5절), 그 구체적 방법 중 하나로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할 것을 요구하신다.3)


  다. 아모스 5:21-24

  이사야, 예레미야, 미가가 남유다에 대해 예언한 선지자인 것과 달리 아모스는 남유다 출신으로서 북이스라엘에 대해 예언한 선지자이다. 남유다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리지 못했던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왕이 벧엘과 단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섬기고(왕상 12:8,29),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으며(왕상 12:31), 절기를 유다와 비슷하게 멋대로 정하였으므로(왕상 12:32), 북이스라엘에는 ‘성전 중심의 의식’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성전 아닌 산당 등에서 레위 사람 아닌 제사장에 의해 드려지는 제사(예배)를 받으실 리 없었다. 따라서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고, 너희 성회를 기뻐하지 않으며(21절), 번제, 소제, 화목제를 받지 않으시고(22절), 노랫소리, 비파소리도 듣지 않겠다고(23절) 꾸짖으신다.

  

  성전 제사(예배)의 형식조차 갖추어지지 않은 제사(예배)에 대하여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말씀지킴의 방법은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24절)” 흐르게 하는 것이다.  

       

  라. 미가 6:6-9

  위 가.나.항 처럼 명시적으로 성전 중심의 의식에 대한 비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을 헌물로 들고 가서 경배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하는 고민에 대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仁慈, kindness or steadfast love(ESV)}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2. 신약 

  앞서 본 미가 6:6-9 말씀의 ‘정의를 행함, 인자를 사랑함, 하나님과 겸손하게 함께 행함’은 구원을 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 백성의 반응으로서 마태복음 23:23의 정의, 긍휼{mercy(ESV)}, 믿음{faithfulness(ESV)}에 해당된다.4)

  

  예수님은 레위기 27:30-33의 십일조 관련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 박하와 회향과 근채(아주 작은 수확물)의 십일조까지 드리는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이 십일조도 행해야 하지만,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 긍휼, 믿음을 버렸다며 그들의 위선을 꾸짖으신다. 


3. 성경에서의 정의와 공의의 의미

  가. 구약에서 하나님 말씀지킴의 근본은 ‘하나님 사랑’이다. 즉, 이스라엘 헌법 제1조 제1항에 해당하는 신명기 6:4,5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예수님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레위기 19:18 말씀을 하나님 사랑과 동급으로 보아(마 22:39의 ‘둘째도 그와 같으니’는 둘째의 가치도 첫째와 같다는 의미임)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즉 구약 전체의 근본 줄거리라며, 사람 사랑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마 22:37-40).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율법교사도 율법의 핵심을 예수님과 똑같이 요약하였다(눅 10:25-27).

  

  그런데, 위 1.항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성전 의식 대신 원하신 말씀지킴의 내용은 1. 라.항 미가서와 관련한 하나님 사랑(하나님과 동행)을 제외하면, 가난한 자, 힘없는 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의를 행하는 것, 즉 사람 사랑이었다.

  또, 위 2.항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이 형식적 율법 준수 대신 원하신 말씀지킴의 실질적 내용도 믿음(하나님 사랑) 외에 사람 사랑의 기본적 형태인 정의와 긍휼이었다.

   

  나.5) 성경에서의 정의는 법적 공평보다는 훨씬 큰 개념이다. 정의를 행한다는 것은 국가 측면에서 보면, 특히 힘없는 자들을 힘 있는 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권력을 공정하게 행사하는 것, 공정한 사법 기관이 적절히 작용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개인 측면에서 보면, 정의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힘이 없고 사회적 보호를 덜 받는 자를 이용하지 않는 것과 나아가 정직하고 공정하게 사업하는 것, 자신의 말을 성실히 지키는 것 등을 의미한다. 

  또, 성경에서의 정의는 하나님의 도덕법과 일치하는 방법으로 상호 의무를 이행하는 것,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올바른 결정을 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공의는 특히 다른 사람에 대한 행동과 관련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을 의미하고, 또는 하나님의 규범과 도덕적 기준에 따라 옳은 것을 의미한다. 


Ⅳ.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1. 구약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사 5:16),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사 30:18),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사 61:8)” 등과 같이 하나님의 정의에 관한 구절도 있으나, 구약에서는 주로 하나님의 공의가 언급되는데, 구원이나 심판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가.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6)

  -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시 71:15)

  -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사 45: 21)

  -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사 51:5)

  -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사 51:6)

  - ...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사 51:8)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사 56:1)

  - ...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사 59:16,17)

  - ...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 ...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사 63:1)  

  - ...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슥 9:9, 메시아의 공의와 구원)


  나. 하나님의 정의, 공의와 심판

  -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시 7:8, 11, 12, 13)

  -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시 9:7,8)

  -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시 72:1, 2)  

  - 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시 96:13)

  -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시 98:9)

  -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사 11:4) : 사 11:1-5은 메시아의 심판에 관한 것이다.

  -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사 28:17)

  

  다. 예수, 하나님의 공의

  ①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사 51:4)

  ②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말 4:1) :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요 8:12)이 위 구절을 성취하였다고 한다.

  ③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진실로 정의를 행할 것이며,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사 42:1-4) 


 “나 여호와가 의로 너(‘나의 종’을 의미함)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사 42:6)”, “... 내가 또 너(‘나의 종’을 의미함)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는 말씀은 하나님의 종(Messiah)이 이방의 빛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을 땅 끝까지 베푼다는 내용인데, 위 두 성경말씀과 위 ①, ②를 종합하여 보면, “나의 종(하나님의 종, Messiah) = 이방의 빛 = 만민의 빛 = 내 공의(하나님의 공의) = 공의로운 해 = 예수님”이 된다.

  ‘예수, 하나님의 공의’라는 복음성가 제목은 위 ①, ② 성경구절에 근거한 것이 아닐까?


 2. 신약

  구약의 ‘하나님의 공의(righteousness)’가 신약에서는 주로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로 표현되는데, 구약에서와 같은 ‘하나님의 의와 구원’, ‘하나님의 의와 심판’에 관한 부분 외에 ‘예수를 통해 인간에게 전이(轉移, impute)되는 하나님의 의’(로마서, 갈라디아서 등)가 등장한다.

  

  가. 하나님의 의와 구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 여기서의 ‘의’는 사람에게 전이된 하나님의 의.


  나. 하나님의 의와 심판

   -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 17:31)  : 예수님을 통한 공의의 심판.

   -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 모든 사람이 ‘의로우신 재판장’으로부터 심판을 받으나(히 9:27)7), 믿는 자에게는 구원과 상급의 심판이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멸망의 심판.


  다. 예수를 통해 인간에게 전이되는 하나님의 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1-26)


  라. 기타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행 24:24,25)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righteousness)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 황제가 주는 정의, 평강, 희락(justice, peace, joy : 로마의 통치이념, 목표)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주는 의와 평강과 희락.

  -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3)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새번역)

    But according to his promise we are waiting for new heavens and a new earth in which righteousness dwells.(ESV)

 

Ⅴ.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정의, 공의’와 ‘하나님의 정의, 공의’의 상호 관계

  1. already but not yet

  하나님 나라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reign)의 개념이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 이후 이 세상을 통치하심으로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The kingdom of God was already present in Jesus and his ministry, but it was not yet present in its entirety. It was already inaugurated but not consummated).8)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된다.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이미 시작된 우리의 구원도 마지막 때에 예수님의 재림과 죽은 우리 몸의 부활로 완성된다. 그래서 바울은 양자의 영, 성령을 이미 받은 우리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온전한 부활 육체를 받는 것)을 기다린다고 했고(롬 8:15, 23), 히브리서 저자도 예수님이 예수님을 바라는 자들을 (최종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두 번째 나타나실 것이라고 했다(히 9:28).


  우리는 ‘나라가 임하시오며(Your kingdom come)'라고 기도할 때 내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권을 받아들이겠다는 결단을 새롭게 함과 더불어 이 시대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하나님 나라의 최종 완성{예수님의 재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을 기원한다. 

   

  2. 새 하늘과 새 땅

  예수님이 재림하면,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친다(고전 15:24).

  또,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며,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된다(벧후 3:10-13, 계 21: 1-8).

 

  3. 우리가 행할 정의, 공의와 하나님의 정의, 공의와의 관계

  -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벧후 3:12, 새번역)

    waiting for and hastening the coming of the day of God, ...(ESV)

    as you look forward to the day of God and speed its coming...(NIV)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개역개정)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사 56:1).

  -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 10:12)

  

  예수님의 재림은 확실히 이루어 질 것이지만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는 점에서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2차 대전의 분수령인 노르망디 상륙작전(1944. 6. 6.)과 나치 독일의 최종 패망(1945. 5. 8.경)에 비유한 서구 신학자가 있다고 한다.

  또, 사탄의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 부활로 인한 예수님 통치의 시작을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 3:15)’라는 말씀이 실현된 것으로 보고, 예수님 부활로 인해 사탄의 세력이 이미 그로기(groggy) 상태에 빠졌으며 예수님 재림으로 완전히 멸망할 것이라는 강해를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의 2차 대전은 약 11개월간 많은 연합군이 죽어갔어도 끝이 확실히 보이는 전쟁이었고, 기독교인을 탄압하던 로마제국이 사도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으로 인해 313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것은 예수님 부활 이후 300년도 되지 않아 이루어진 일이다.


  그에 비하면, 예수님의 재림은 참 더딘 것 같다.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지만(벧후 3:8),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너무나 먼 일처럼 보이고, 악의 세력은 그로기 상태라기보다는 너무나도 강해 보이며, 그로 인한 인간의 고통도 너무 커 보인다. 주의 약속(예수님의 재림)이 더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하지만(벧후 3:9), 악인이 형통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시 73:13).”라는 시편 기자의 탄식이 나의 탄식이 된다. 이 거대한 혼돈과 흑암의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개역개정 성경이 잘못 번역하고 있는 베드로후서 3:12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하였다. 

  

  이하는 위 구절의 ESV study note 부분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hastening(Gk. speudό, ‘hurry [by extra effort]’) the coming of the day of God”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경건한 삶을 통하여 예수님의 재림 시기에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물론 하나님이 예수님의 재림 시기를 미리 알지 못한다거나 미리 정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마 24:36, 행 17:31 참조). 그러나 하나님이 그 날을 정해놓으실 때에 이 현시대에서 ‘믿는 자들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하나님의 모든 목적이 성취된 후에야 그 날이 오도록 정해놓으셨다는 것이고, 그러한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이 인간 대리인(우리 크리스천)을 통하여 일하실 때 성취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크리스천들이 다른 사람들과 복음을 나누고, 기도하며(마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참조),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여 갈 때, 크리스천들은 실로 예수님의 재림을 포함한 하나님의 목적 달성을 앞당기는 것이다.』: 위 주석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목적이 반드시 모든 인간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이 시대에서의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우리의 미약한 인간사랑(정의와 공의를 행함)이 하나님 나라(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의 최종 완성을 앞당길 수 있다고 이해하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하나님의 공의가 곧 나타날 것이니,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과 하나님의 공의의 온전한 통치가 좀 더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바 하나님의 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이 땅에서 정의를 지키며 공의를 행하여야 하겠다(사 56:1, 벧후 3:13).

  하나님이 머지않아 하나님의 의를 이 땅에 비처럼 내리시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그 날이 좀 더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이 땅에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며 우리의 묵은 땅을 갈면서{마음의 할례(렘 4:3,4 참조)} 하나님을 찾도록 하여야겠다(호 10:12).


  한편, 성전 중심의 의식에 치우친 나머지 말씀지킴(사람 사랑, 정의)에 실패했던 구약시대의 유대인들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말씀을 지키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고 겉으로 보기에 말씀을 철저하게 지킨 것 같아 보였지만, 말씀의 알맹이인 정의, 긍휼, 믿음을 버린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이 사회에서 정의를 행하기 위해 힘쓰고 있고 일정한 업적도 있으나, 자기 의와 자기만족에 빠져버릴 수 있는 이 시대의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전해 받은 하나님의 의, 예수님의 신실함,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이루어 가야 할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의의 도구에 불과함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Ⅵ. 마치며

  법관 임용 면접을 위해 제출한 일정 형식에 따른 자기소개서의 ‘내가 되고자 하는 바람직한 법관상’ 부분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법관이 되겠다고 썼던 기억이 난다. 별 생각 없이 적었던 것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주 훌륭한 답변이었던 것 같다.

  

  나그네, 고아, 과부 등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살필 줄 아는 법관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되(출 23:6), 반대로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도 말고(출 23:3),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어야겠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골 3:23).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 판결하는 영이 되시는 하나님(사 28:6)을 의뢰하고, 공의로 백성을 재판하는 자(신 16:18)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날에 우리의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시 7:11, 사 33:22, 딤후 4:8) 앞에 부끄럽지 않게 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독일 유학을 다녀오신 모 부장판사님으로부터 그 분이 방청했던 독일 합의부(법관 3명으로 구성된 재판부) 법정의 3개의 판사석에 다음과 같은 말이 하나씩 적혀 있다고 들었다. 위에서 살펴본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판사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아무도 두려워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라. 그리고 정의를 행하라.”


1) ESV Study Bible의 article “The time between the Testaments" 1785면 참조


2) 고아, 과부 보호 - 출 22:22 참조. 고아, 과부, 나그네 보호 : 신 24:17,19 21, 26:12,13 등 참조


3) 이방인 보호 - 출 22:21, 23:9 


4) ESV Study Bible 1705면 참조


5) ESV Study Bible 1315, 1412, 1666, 1667면 참조


6) 목사님이 2011. 1. 21. 연합목장에서 하신 설교말씀 참조



7) 요 5:24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 ‘심판’에 관한 개역개정판 난하주에는 ‘또는 정죄’라고 기재됨.


8) ESV article의 “Th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1803 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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