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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더한인교회 자유게시판입니다.

김선교사님으로부터

2010.09.05 22:01

황목사 조회 수:69705

샬롬,

 

무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요즈음 모두들 밤잠을 설치는 어려움이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럴때 마다 천국에는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할 텐데하는 현실 도피적인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작년 여름은 시원했는데 왜 하필이면 건강상이유로 안식년으로 나온 한국에 불가마와 같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지 하는 철부지 투정을 하나님께 해보기도 합니다. 오랜 병마에 장사가 없다고 저 역시 연약한 육신에 연약한 영혼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어서 오늘 새벽에는 더욱더 주님께 오래 매달리고 싶어집니다.

 

작년부터 읽어 왔던 요한 일서 4장 16절 말씀 사랑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이 계속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세상에는 이러한 것이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즉 김치를 김치통에 넣을 수 있지만 김치통을 김치에 넣을 수 없고 김치통을 냉장고에 넣을 수 있지만 냉장고를 김치통에 넣을 수 없기에 요한일서 말씀은 더욱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특별이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피조물인 제가 영원한 생명을 말씀하는 진리를 접할 때마다 겪는 통곡의 벽 같은 것입니다. 그 벽을 넘어야 제대로 생명수를 마실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늘 끝까지 닿아 있을 것 같은 그 벽의 두께와 크기 앞에 저의 외소함이 드러납니다.

 

그래도 한 줄기 은혜의 빛이 벽사이로 스며들어와서 두 개체가 서로 들어갈려면 최소한 대등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등할려면 서로 자유로워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유롭지만 저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거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요한복음으로 가서 그 구절이 있는 앞절들을 묵상하였습니다. 진리가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가지고 또 통곡의 벽에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8장 25절에 유인대인들이 예수님더러 네가 누구냐고 묻고 있었습니다. 이 말이 저에게는 유대인 자신들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들립니다. 본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율법을 지켜서 스스로를 선택받은 백성으로 자부하고 있는데 왜 자신들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들리는지 묵상하였습니다. 세상의 철학과 종교는 자신을 스스로 알 수 있다고 부추깁니다. 그리고 명상과 수련과 도를 터득함으로써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유대인이나 세상의 모든 사상은 모두 하나같이 은혜없이 자신의 피와 땀으로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를 근거로해서 그 들의 인생은 한없는 이생의 자랑을 위해서 매진하고 자신을 치장합니다. 그러나 그 것은 진정한 자신도 아닌 허상이며 자유가 아닌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서 수고하는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진리만이 유일하게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 진리앞에서는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가 바로 자유롭게 된다는 역설인 것입니다. 이 역설 때문에 세상사람들은 진리를 거부하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역설이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창살없는 감옥의 허구성이 얼마나 부패하고 죽음의 냄새를 내는 것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것이 바로 이세대가 추구하는 이생의 자랑인 것입니다.

이세대는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채 한이 없는 무한 경쟁속에서 자신의 힘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실력과 힘이 자신일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실력과 무기를 키워갑니다. 심지어 가장 고상한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봉사하는 일에도 자신의 표를 얻기 위해서 앞치마를 두르고 밥상을 나르거나 연탄을 배달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선거철만 등장하는 단골메뉴가 되어버렸습니다.

 

더 고묘한 위장은 사람들은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이제 고상한 일도 좀 해보야 한다는 명예욕에 이끌려서 소녀가장이나 독거노인을 방문하여 선물을 나누어 주는 행위는 때로는 좀처럼 분간하기 힘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것 역시 명예욕의 노예가 된 자유롭지 못한 행동인 것입니다.

 

인간이 진정 남을 돕기 위해서는 돕는 대상을 동정이나 자선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오늘 요한일서 말씀처럼 대등하고 자유로운 관계에서 만나야 서로 서로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던 것 처럼 자기를 포장하고 있는 모든 장식을 벗어버리고 자유인으로 우리를 대하듯 우리 역시 도움의 대상에게 이생의 자랑의 장식을 벗어버리고 대하지 않으면 진정 그 들과 사랑의 관계를 이어 갈 수 없습니다. 즉 이런 이생의 자랑이 십자가 앞에서 죽지 않으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지 않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상실의 아픔을 겪게하여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고집스런 자녀였기에 건강을 잃기 전에는 장애인을 사랑의 대상보다는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왔다가 그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이자 하나님이 내안에 내가 하나님안에 거하는 사랑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작년 10월 건강악화로 세브란스병원입원을 기점으로 서울에서 약 8개월 생활 중에 만났던 분들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글입니다.

 

5월말에 서울 생활을 접고 대전으로 내려왔습니다.  파킨슨병이 심해 질수록 이사를 더 자주 다녀야 하니 인생살이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지난 8개월 동안 4번 이사했으니 평균 2개월마다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최희준씨가 불렀던 인생은 나그네 길이란 유행가가 요즘 들어 부쩍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서울에서 마지막 3개월 동안에 이전에는 평생동안 만나본적이 없었던 많은 분들을 산보 중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임시 숙소에 살고 있기에 자주 주거지를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산보가는 공원도 자주 바뀌게 되었습니다. 거주하는 지역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공원은 가운데에 자연학습장이 있습니다. 거기에 있는 식물들을 보러 초등학생들이 자주 단체로 오기도 합니다. 자연학습장을 끼고 도는 산보 길은 350m 정도로 우레탄이 깔려 있어서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라 꽤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걷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오후가 되면 그 곳에 가서 걷기 운동으로 몸을 단련했습니다.

 

처음으로 이 공원에 산보 갔을 때 휠체어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와 딸처럼 보이는 40대 여인이 휠체어를 밀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휠체어를 타본 이후에는 장애인만 보면 제 심장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억누를 수 없는 친근감으로 마음의 발동이 걸려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분들께 다가갔습니다.

 

할아버님 이렇게 좋은날 나오셔서 바람을 쐬니까 기분이 좋으시지요 하고 반가운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님은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휠체어를 밀고 가는 여인이 저를 쳐다 보더니 잔뜩 경계심과 두려움을 품고 얼굴이 굳어 있는 채로 쏜살같이 휠체어를 밀고 앞으로 가버렸습니다.  처음으로 당해보는 거부감 때문에 순간 멈추어서 그 들의 뒷모습을 한창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인사하지 않아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선글라스를 벗을 필요가 없는 자유로운 서울입니다. 그러나 서울 사람들은 낯선 사람이 접근할 때 경계심을 품고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그 도시인들의 단면을 제가 직접 보고 당한 것입니다. 사람으로부터 거절당하고 배척당하는 것처럼 당황스럽고 슬픈 일이 어디에 있을까요? 순수한 마음마저 의심하고 회피하여 달아나는 현대인들 과연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 라고 한참 생각에 젖어있다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저는 피하여 먼저 가버린 그 부녀를 찾았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그 여인이 휠체어에서 그 할아버지를 내리게 하여 공원 안쪽 넓다란 평상에 눞히시더군요. 그리고 거기 계셨던 할머니와 모녀 간에 벤치에 앉아서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들에게 다가가서 잠시 앉아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는데 그 여인과 할머니는 계속 경계심을 품고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은 저도 이 할아버님처럼 휠체어를 타고 다녔습니다. 지금도 팔 다리를 잘 쓰지 못하지요. 파킨슨병에 걸려서 휠체어를 타고 다녔을 때 그 심정을 잘 알기에 반가워서 할아버님께 인사드렸습니다 라고 하니 할머니와 여인의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며 좀 앉으세요, 우리 남편은 치매라서 말을 못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파킨슨병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면서 아 그렇군요 치매에 걸리신지는 오래 되셨나요? 라고 했습니다.

 예 오래 됐습니다, 이 양반 우리가 잘 돌봐줘서 그래도 이 정도지 아니면 벌써 저승 사람 되었을 것이요.

  ! 네. 할아버님께서 가족복이 많으신 분 같습니다. 제가 잘 걸을 수 없었을 때 방안에 있으니 너무 답답하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바람도 쏘이고 나무와 사람들과 땅이 뒤로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것이 어찌나 즐거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힘드시겠지만 할아버님을 자주 이렇게 모시고 나오셔서 휠체어 태워 주세요. 말을 못하시니 제가 그 심정 이해하여 말씀드립니다 라고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 앞으로 더욱 잘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드네요

 

그리고 사흘 후에 또다시 그 할머님과 따님과 휠체어 타신 할아버님을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오히려 그 분들이 저에게 반가운 미소로 먼저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내셨습니다. 그 이후에 제가 다른 일로 공원에 며칠 동안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 공원에 갔는데 휠체어 할아버지를 포함한 세분을 만났습니다. 그 따님이 오래간만 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하면서 마치 고향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갑게 인사를 하셨습니다. , 반갑습니다. 아이구! 할아버님 점점 더 젊어지시네요!라고 하며 할아버지 손을 잡았더니, 할아버지의 무표정한 얼굴에 미소가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할아버지 가족들의 경계심과 두려움을 푸는데 한 몫을 한 그 반갑지 않은 녀석에게 제가 속삭였습니다

파킨슨병아 고맙구나

그리고 이후 여러분의 장애인 어르신들을 만나게 되었고 저는 이전과 다른 마음으로 그 분을 대 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장사하시고 장년시절에는 아파트 수위로 계시다가 뇌경색이 와서 이제 그만 두시고 자전거로 공원에 매일 출근 하시는 60대 박씨 어르신은 발병초기에 걷지도 못하시다가 꾸준히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하셔서 지금은 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으시지만 그래도 절뚝거림 없이 걸으시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조용하고 말이 없으신 편이지만 저를 보시면 그 반가운 눈에 빛이 나면서 약값은 많이 들지 않느냐고 걱정해 주셨습니다.

 

재경부의 공직자로 계시면서 일본으로 골프여행을 가셨다가 뇌경색이 와서 일본병원에 입원하셔서 혼이 나셨다고 하시면서 사모님과 거의 매일 공원에 오시는 60대 조씨 어르신. 오른발과 오른손에 마비가 와서 걷기가 불편하시지만 그래도 열심히 걸으실려고 애쓰시며 걷는 모습을 보니  안스러워 제가 다가가서 말을 거는 순간 너무 놀라하셨는데 아마도 걷기에 집중하고 계시다가 갑자기 소리가 들리니 놀라셨던 모양입니다. 제가 그 분과 보조를 맞추어 천천히 걷는 것이 미안해서 저보고 빨리 걸어가라고 하시는 다른 사람 배려가 깊으신 분입니다. 온화하신 얼굴과 밝은 미소와 어눌한 말씀이 그립습니다.              

 

비가 오는날 약간 왼쪽 다리를 약간 저시면서 제가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니 쾌활하게 나는 종합병원이야, 안 아픈데가 없지 고혈압 당뇨, 관절염 . 하시던 80대 중반의 전직 내과 의사셨던 할아버님. 비오는날 산보하시는 분은 보통분들인이 아닌데요? 하니 이병은 전천후로 움직여 줘야 하지. 먹는 약이 하루에 20 정이 되는데 15년간 먹었지만 별로 부작용이 없는 것 같아 하시면서 허허 너털 웃음을 웃으시면서 의사답게 제 병에 대하여 많은 조언을 해 주시던군요. 환자분 중에서 제일 빨리 걸으셔서 제가 보통 걸음으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유일한 분이었습니다.

 

건축업을 하시다가 뇌경색이 와서 그만 두시고 자주 공원에 나오셔서 왼발을 절뚝거리시지만 건장한 60 후반 강씨 어르신. 검은 피부와 건장한 체격과 윤곽이 뚜렸한 얼굴 때문에 처음에 말을 걸기가 부담스런 느낌이 들어서 제가 머뭇거렸던 분이지요. 그런데 말을 붙여보니 의외로 따듯한 미소로 반겨주시며 저의 병을 물어보시면서 관심을 보이시더군요. 자신보다 월남에서 제초제에 노출되어 노년에 신장투석으로 고생하는 동생을 먼저 걱정하는 책임감이 강한 형님의 모습을 보여주셨던 분입니다.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병원만도 25개월 계시다가 의사가 포기했지만 기적적으로 회생하셔서 지팡이에 의지해서 공원 한바퀴 돌고 또 휠체어에 쉬셨던 80 대 유씨 할아버님. 기적적으로 회생하셔서 그런지 가장 정신력이 강해 보이셨습니다. 자녀에 대하여 묻자 큰아들은 현대자동차 간부로 중국 지사장으로 있고 작은 아들은 영화배우며 막내딸은 학교교사라고 하시면서 자식생각에 눈을 감으시더군요 영화배우는 제가 아는 사람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름을 물었더니 제가 본 영화 나오신 분이더군요. 교회의 장로님이신데 어떻게 아들이 영화배우 되겠다는 것을 찬성하셨나요 라고 물으니 그렇지 않아도 대학 연극영화과에 지원했을 때 등록금을 주지 않았는데 걔가 너무 가고 싶어서 친구한테 빌려서 등록금을 내었더군요. 나 중에 내가 갚아 주었지요. 아들이 너무 좋아하니까 말릴 수 없더군요 라고 하셨습니다. 떠나온지 얼마전에 만났는데 할아버님께서 호주머니 속에서 뭐인가 꺼내어 제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먹는 잣이었습니다. 할아버님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면서 잣을 맛있게 먹으며 같이 산보를 하였습니다

이분들을 포함해서 제가 파킨슨병을 심하게 앓고 난후에  이름도 신분도 잘 모르지만 대화를 나누었던 많은 분들.. 모두들 이제 그리운 얼굴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분들을 만날 때 저도 모르게 제가 가지고 있는 육체적 장애 손떨림, 발이 얼어 붙는 것 손발이 뻗뻗하게 굳어오는 것등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자기일 처럼 진지하고 같이 아파하는 마음으로 들어 주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그렇게 자기일 처럼 열심히 들어 주시고 저의 마음이 아무런 조건없이 그대로 받아주시니 저는 산보를 마치고 돌아올 때 마다 생의 활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에 알게 된 장애자 어른들을 통하여 요한일서 말씀의 의미가 무었을 말씀하고 계신지를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처음에는 공원에서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고픈 마음에서 다가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분들은 저에게 억만 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평안와 위로와 어루만지는 마음으로 저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었인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것은 돈, 명예, 지식, 능력, 권력, 건강도 아닌 바로 조건없이 주는 따듯한 마음이 었습니다. 신비로운 것은 이런 마음이 야망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입니다.

대전으로 내려와도 건강하고 재능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장애자 어르신들이 보고 싶고 그리워집니다  아마도 그 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듯 제가 그분들 안에 그 분들이 제안에 거하는 하나가 된다는 진리와 대등함과 자유와 진정한 자신을 알게 된 기쁨이겠지요.  참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고 넒은 것이지를 실감나게 하였습니다.

 

지인이도 방학을 하여 대전에서 4식구 모두가 같이 지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학생들에게만 전했던 복음의 진리를 안식년 동안 가족들간에 서로 매일 가정예배를 통하여 나누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그리고 지인이는 방학이 끝나서 어제 기숙사로 돌아갔습니다.

 

대전에 와서 한번더 이사를 해서 지금은 중국들어 갈때까지 이사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손희영 목사님께서 강남숙소에 방문하셨고 홍승기 목사님과 황성현집사님과 같이 대전까지 오셔서 대전의 동역자분을 같이 만난 자리에서 저의 부부를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서울에서는 손민석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목동 숙소에 오셔서 반가운 만남을 하였습니다. 이 곳 대전에서는 특별히 장용철 집사님께 많이 배려하여주시고 도와주셔서 지내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계속 약물적응과 재활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최악의 고비였던 지난 2월 보다는 훨씬 지내기가 수월하지만 아직도 원하는 몸상태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약효가 떨어지는 시간에는 걷기가 힘들고 자세가 불안정합니다.

안식기간중에 저의 부부가 영육간에 잘 회복하여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주님의 평강과 은혜가 동역자님 가정에 흘러넘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8월 9일

대전에서 김이삭 목리브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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